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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시인, <장미와 가시>: 희망과 고통의 역설적 동거

by soulbooks 2024. 9. 13.

 

서론

김승희 시인의 <장미와 가시>는 삶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그리고 그 기대가 좌절될 때의 분노와 절망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눈먼 손'이라는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삶의 진실을 손으로 만지려는 인간의 처절한 시도를 보여준다. 가시와 장미라는 대비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기다린 희망이 실현되지 않을 때의 깊은 상실감을 표현한다. 이 글에서는 <장미와 가시>에서 드러나는 고통과 기대의 이중적 의미, 비극적 인식, 그리고 시적 기법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1.  '눈먼 손'의 상징성과 삶의 고통 자각

<장미와 가시>의 첫 연은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 표현에서 '눈먼 손'은 시의 상징적 핵심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감각을 통해 삶의 진실을 탐색하려는 시인의 태도를 나타낸다. '눈먼 손'은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만 존재를 경험하고 이해해야 하는 한계를 지니며, 이는 곧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진정한 삶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 이때 '눈먼 손'으로 만지는 것은 가시로 가득 찬 삶의 고통이며, 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고통의 깊이를 깨닫게 만든다.

 

"그건 가시성이었어"라는 구절은 손으로 만진 삶의 본질이 가시, 즉 고통임을 드러낸다. '가시성'이라는 단어는 고통스러운 삶의 상처와 아픔을 상징하며, 삶이란 본질적으로 가시투성이임을 암시한다. 시인은 이러한 상징을 통해 고통이란 삶의 필연적인 일부이며, 인간은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여기서 '눈먼 손'은 고통의 진실을 자각하고도 미소 짓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나타내며, 이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인은 '눈먼 손'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고통 속에서의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보여준다. '눈먼 손'이 의미하는 것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삶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면서도 그 안에서 꽃을 피우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이다.

2.  가시와 장미의 대비: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

<장미와 가시>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은 '가시'와 '장미'의 대비를 통해 고통과 희망의 이중적 의미를 구체화한다.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라는 구절은 가시가 많을수록 장미가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다. 이는 고통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그 끝에는 아름다운 결실이 있을 것이라는 인간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가시로 상징되는 고통을 견디면, 그 고통을 상쇄할 장미꽃이 필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곧바로 좌절된다.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장미가 피어나더라도 고통의 가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고통과 희망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삶의 역설적 본질을 강조한다. 장미가 피어나기를 기다렸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 시간은 결국 고통의 반복일 뿐이라는 절망감이 이 구절에 스며 있다.

 

시인은 이러한 대비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비극성을 보여준다.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과,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깊은 좌절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시인은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라는 절망적인 구절을 통해, 끝끝내 피지 않는 장미를 기다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희망이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3.  장미와 가시의 역설적 관계와 삶에 대한 비관적 인식

<장미와 가시>의 후반부에서는 장미와 가시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삶의 본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삶의 비극적 본질을 탐구한다. 여기서 '가시장미', '장미가시', '장미의 가시', '장미와 가시'는 모두 삶의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복합적 상황을 상징한다. 이는 장미와 가시가 따로 구분될 수 없는, 즉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시장미'는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의미하고, '장미가시'는 희망 속에 잠재된 고통을 상징한다. '장미의 가시'는 장미가 지닌 고통의 본질을, '장미와 가시'는 희망과 고통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시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고통과 희망이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하는 삶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이는 삶의 본질이 고통과 희망의 끊임없는 교차점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시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눈먼 손"이라는 표현을 통해,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삶의 비극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눈먼 손'으로 삶을 만지며 가시와 장미를 구분할 수 없는 현실은 인간이 끊임없이 희망을 기대하면서도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그 삶의 본질적인 비극임을 시인은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결론

김승희 시인의 <장미와 가시>는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는 삶의 비극적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다. 시인은 '눈먼 손'이라는 강렬한 상징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삶의 진실을 촉각으로 탐색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시도를 표현하며, 가시와 장미라는 대비적인 이미지를 통해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그려낸다. 이 시는 고통과 희망이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하는 삶의 복합성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삶이란 고통과 희망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여정임을 깨닫게 하는 <장미와 가시>는, 우리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