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영랑 시인의 <눈물에 실려 가면> : 죽음을 통한 슬픔의 승화

by soulbooks 2024. 10. 9.

 

서론

김영랑 시인의 <눈물에 실려 가면>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화자가 느끼는 깊은 슬픔을 다룬 시다. 이 시는 아내의 무덤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화자의 길 위에서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이 승화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눈물, 무덤, 달빛, 바다와 같은 상징적인 시어들이 화자의 내면을 표현하며, 그 슬픔을 자연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승화시키는 과정이 전개된다. 이 글에서는 <눈물에 실려 가면>에 담긴 문학적 기법과 화자의 내면에 자리한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해 보겠다.

 

1.  눈물과 무덤의 상징성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적 시어는 ‘눈물’이다. 눈물은 화자가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슬픔을 드러내는 표현이자, 동시에 그 슬픔을 정화하고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눈물에 실려 가면 산길로 칠십리"라는 첫 구절에서부터 눈물은 화자가 감정을 표출하는 주요한 통로로 등장하며, 화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의 무덤을 떠나고 있다. 이때 눈물은 단순히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작용한다.

 

‘무덤’ 역시 슬픔의 공간적 상징으로 사용된다. 무덤은 아내의 죽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화자가 자신의 고통을 떠나기 어려운 장소로 작용한다. "돌아보니 찬바람 무덤에 몰리네"라는 구절에서 무덤은 차갑고 쓸쓸한 이미지로 그려지며, 화자가 그곳을 떠나야 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한편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장소로 존재한다. 이러한 상징성은 화자의 감정적 갈등을 더욱 부각하며, 아내의 죽음이 화자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눈물과 무덤을 통해 화자는 자신의 슬픔을 마주하게 되며, 그 슬픔은 화자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화자는 단순히 고통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승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친다. 눈물은 그저 슬픔의 표현이 아닌, 화자가 아내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의 감정적 치유를 상징한다.

 

2.  공간 이동을 통한 슬픔의 승화

이 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공간의 이동을 통해 화자의 심리적 변화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처음 화자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슬픔에 잠겨 있으며, 그곳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울이 천 리로다 멀기도 하려만"이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그 슬픔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서울로 향하는 길은 화자가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여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서울로 가는 과정에서 화자는 "뱃장 위에 부은 발 쉬일까 보다"와 같은 구절을 통해 신체적으로도 지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산길을 걸어가며 느꼈던 슬픔과 지친 발은, 이제 배를 타고 물 위로 이동하면서 잠시나마 쉼을 얻는다. 이러한 공간적 변화는 화자가 슬픔을 조금씩 내려놓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과정을 상징한다. 산길에서의 걷는 행위는 슬픔의 무게를 견디는 모습이라면, 배를 타고 물 위를 떠가는 장면은 그 슬픔이 점차 가벼워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달빛과 바다 역시 화자의 감정 승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빛으로 눈물을 말릴까 보다"라는 구절에서 달빛은 화자의 눈물을 말리는 존재로, 화자의 슬픔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달빛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빛으로, 화자의 눈물에 닿아 그를 위로하고 있다. 또한 "고요한 바다 위로 노래가 떠간다"는 구절에서 바다는 눈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미지로, 그 깊고 고요한 모습이 화자의 슬픔을 더욱 강조하는 동시에 그 슬픔을 흡수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3.  노래를 통한 슬픔의 표현과 승화

이 시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노래’는 화자가 슬픔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다. "고요한 바다 위로 노래가 떠간다"는 구절에서 노래는 화자의 슬픔이 공감각적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다. 시인은 이 노래를 통해 슬픔이 단순히 표현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예술적 형태로 승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슬픔은 더 이상 감정의 무게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적 형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설움도 부끄러워 노래가 노래가"라는 구절에서 슬픔은 이제 부끄러움으로 표현된다. 화자는 배 안에서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지며, 그 대신 노래라는 형태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여기서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화자의 감정적 승화를 상징하는 예술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슬픔을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화자는 이제 그것을 노래로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시는 슬픔을 승화시키는 과정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화자는 자신의 내면을 치유해간다. 노래는 단순히 슬픔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슬픔을 넘어서려는 화자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시는 슬픔을 예술적 형태로 전환하고, 그것을 통해 감정의 승화 과정을 보여준다.

 

결론

김영랑 시인의 <눈물에 실려 가면>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화자가 느끼는 깊은 슬픔을 자연과 예술적 표현을 통해 승화시키는 작품이다. 눈물, 무덤, 달빛, 바다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는 슬픔을 마주하고, 그것을 점차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공간의 이동과 노래라는 예술적 표현을 통해 슬픔은 단순한 감정의 무게를 넘어 예술로 승화되며, 화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 시는 단순히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예술적 형태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영랑은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시 속에서 아름답고도 강렬하게 표현하며, 그 슬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