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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시인의 <‘꽃’의 패러디> 분석: 명명 행위의 본질 왜곡에 대한 비판적 고찰

by soulbooks 2024. 8. 30.

 

서론

오규원 시인의 <‘꽃’의 패러디>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하여 명명 행위가 대상의 본질을 왜곡하는 과정과 그 위험성을 비판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김춘수의 <꽃>에서는 대상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인식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긍정적인 행위로 명명을 바라본다. 반면, 오규원은 동일한 행위가 오히려 대상의 본질을 왜곡하고, 고유의 존재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해석하며, 명명이 가지는 폭력성을 고발한다. 이 작품은 언어가 가지는 한계와 더불어,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명명 행위가 실상 얼마나 많은 왜곡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오규원의 시 <‘꽃’의 패러디>를 통해 명명의 행위와 그로 인한 본질의 왜곡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한다.

(1) 김춘수의 <꽃> 패러디를 통한 새로운 의미의 창조

오규원 시인의 <‘꽃’의 패러디>는 김춘수의 시 <꽃>을 재해석하여 명명 행위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있다. 김춘수의 작품에서는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대상을 인식하고, 그 대상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긍정적 과정으로 묘사된다. 이름을 통해 존재는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지며, 비로소 ‘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오규원은 이러한 명명 행위가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왜곡하고 특정한 의미의 틀에 가두는 행위로 해석한다. 이는 언어가 대상의 진정한 모습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내며, 오히려 이름이 대상의 다양한 가능성과 본질을 제약하는 도구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오규원의 시에서, 명명 행위는 대상을 단순히 이름의 틀 안에 가두는 것으로 그려진다. 대상의 고유한 모습과 의미는 명명의 순간에 사라지고, 오직 이름이 지배하는 의미의 틀만이 남게 된다. 이를 통해 시인은 명명이 가지는 폭력성과 제한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며, 이름이라는 언어적 도구가 본질적 인식을 왜곡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김춘수의 시가 대상과의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오규원은 그 관계가 본질적으로 왜곡된 틀 안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하며 새로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러한 시인의 접근은 단순히 김춘수의 시를 반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패러디를 통해 원작의 의미를 뒤집으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해, 명명이라는 행위가 실제로는 대상의 본질을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명명 행위의 본질을 재고하게 만든다.

(2) 반복과 대구법을 통한 명명 행위의 비판적 표현

<‘꽃’의 패러디>에서 시적 화자는 명명 행위가 대상의 본질을 왜곡하는 과정을 반복과 대구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의 1연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라는 구절은 명명 행위가 곧 왜곡의 시작임을 강조한다. 화자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대상이 자신의 본질을 잃고 명명자가 부여한 이름에 맞추어 모습을 바꾸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단순한 명명 행위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과 존재감을 왜곡하고 고정된 의미의 틀에 가두는 폭력적인 행위로 이해된다.

 

이 반복적인 구절은 독자에게 명명 행위의 반복성과 그로 인한 왜곡의 누적성을 상기시키며, 명명된 대상이 어떻게 본질을 잃고 변질되는지를 시각화한다. 대상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의 본질은 점점 더 왜곡되며, 이는 이름에 의해 만들어진 의미의 틀이 대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반복은 명명 행위의 본질적 문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언어와 실제 존재 간의 간극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는 대구법을 통해 명명 행위의 효과를 강조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라는 구절은 주체와 객체 간의 역할을 뒤섞어 명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의 혼란과 왜곡을 나타낸다. 대상이 이름에 의해 규정되고, 그 규정된 대상이 다시 명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환 구조는 언어가 존재를 어떻게 가두고 왜곡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명명과 왜곡이 서로 맞물려 순환하는 복잡한 관계임을 암시하며, 언어가 가지는 힘과 한계를 명확하게 부각한다.

(3) 점층적 구조와 열거법을 통한 본질의 왜곡과 비판

오규원 시인의 <‘꽃’의 패러디>는 시상이 점층적으로 전개되며, 대상의 본질이 명명 행위에 의해 점차적으로 왜곡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시의 1연은 아직 본질이 왜곡되기 전의 상태를 나타내며,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순간을 묘사한다. 그러나 2연과 3연에서 화자는 명명 행위에 의해 대상의 본질이 왜곡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대상의 변질된 모습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 등의 단어는 명명되기 전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금잔화, 작약, 포인세티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의 명명된 상태와 대조를 이루며 본질의 왜곡을 드러낸다.

 

이러한 열거는 단순히 대상의 나열을 넘어, 명명 행위가 대상의 본질을 얼마나 왜곡하고 제한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명명되지 않은 상태의 대상은 자유롭고 다면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명명된 순간 그 의미는 한정되고 고정된다. 시인은 이를 통해 언어가 존재의 본질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한계를 비판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행하는 명명 행위가 실은 대상의 본질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이러한 명명 행위의 주체가 ‘나’에서 ‘우리’로 확대되며, 이는 명명 행위가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임을 시사한다. 이는 곧 우리 모두가 대상의 본질을 왜곡하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존재의 진정한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명명의 행위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완성된 의미의 틀이 다시 다른 모습으로 될 순간을 기다린다”는 구절은 왜곡된 의미가 고착화되면서도, 본질에 대한 탐구가 계속될 가능성을 암시하며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의 지속성을 나타낸다.

결론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는 명명 행위가 대상의 본질을 왜곡하는 과정과 그로 인한 의미의 고착화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작품이다. 김춘수의 <꽃>이 명명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본다면, 오규원은 같은 행위가 대상의 본질을 제한하고 왜곡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며 명명의 행위가 가지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시인은 반복과 대구법, 열거법 등을 통해 명명 행위의 본질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부각하며, 언어가 존재의 진정한 본질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한계를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 언어와 존재, 그리고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명명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힘과 한계를 깨닫고,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 시는, 존재를 언어로 정의하는 행위가 가지는 위험성과 그로 인한 왜곡을 고발하며, 독자들에게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제안한다. 이는 곧, 언어를 넘어서는 본질적 인식의 가능성을 탐구하게 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과 언어 사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