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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비명> 함형수 시 분석

by soulbooks 2024. 9. 18.

서론

함형수의 시 <해바라기의 비명>은 죽음을 앞둔 청년 화가의 강렬한 의지와 삶에 대한 열정을 담은 작품으로, 죽음과 생명, 정지와 역동의 이미지를 대립시키며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 이 시는 단순한 죽음의 수용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생명에 대한 갈망과 죽음 이후에도 꺼지지 않는 꿈을 통해 화자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을 강렬히 표현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해바라기의 비명>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사용된 다양한 문학적 기법, 그리고 시의 배경과 맥락을 바탕으로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해 보겠다.

1.  대립적 이미지와 시어의 상징성

<해바라기의 비명>은 대립적 이미지와 시어를 통해 시의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시의 도입부에서 화자는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서 '차가운 빗돌'은 무덤을 상징하며, 죽음과 멈춰버린 시간, 소멸한 정열을 상징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빗돌은 고정된 것, 즉 죽음 이후의 정지 상태를 나타내며, 이는 살아있는 자들이 기억하는 방식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반영한다. 반면,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는 요청은 정적인 빗돌과 대조되는 역동적인 생명력을 강조한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피어나며, 죽음조차 극복하려는 화자의 불타는 열망을 상징한다. 태양은 삶의 에너지를 상징하며, 해바라기의 존재 자체가 화자의 열정적 삶의 지향점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에서 또 다른 중요한 상징은 '푸른 보리밭'과 '노고지리'이다. '푸른 보리밭'은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하며, '차가운 빗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보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푸른 싹을 틔우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죽음에 대한 화자의 거부와 그 너머의 풍요로운 생명 의식을 나타낸다. '노고지리'는 종달새의 옛말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노고지리가 끝없이 날아오르는 장면은 단순히 꿈을 꾸는 것이 아닌,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을 담고 있다. 이러한 대립적 이미지의 사용은 시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며, 독자로 하여금 죽음을 넘어선 생명에 대한 열정과 갈망을 느끼게 한다.

2.  명령형 어조와 단호한 어조의 효과

시에서 화자는 지속적으로 명령형 어조를 사용하여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와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와 같은 명령형 표현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의지와 꿈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화자의 열망을 담고 있다. 이러한 명령형 어조는 화자의 요구가 단순한 바람이 아닌,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강력한 명령임을 시사한다. 명령형 어조는 독자가 시를 읽는 동안 화자의 강렬한 열망을 깊이 느끼게 하며, 그의 의지가 절대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을 전달한다.

 

특히, 시의 마지막 구절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는 화자의 꿈과 의지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화자가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단을 나타낸다. '노고지리'라는 시어는 꿈을 상징하며,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가능성과 희망을 나타낸다. 이처럼 화자의 꿈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구절은 시의 핵심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3.  색채 이미지와 생명 의식의 강렬한 표현

<해바라기의 비명>은 색채 이미지를 통해 생명 의식과 화자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노오란 해바라기'는 태양을 상징하며, 뜨거운 정열과 생명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과 연결될 수 있으며, 해바라기의 생명력과 정열은 화자가 살아 있을 때 품었던 열정과 삶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해바라기의 '노란색'은 태양의 색깔로, 화자의 열정적 삶과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고자 하는 생명 의식을 상징한다.

 

또한, '푸른 보리밭'의 이미지는 풍성한 생명력과 함께 재생을 상징한다. '푸른'이라는 색채는 신선함과 생명력을 나타내는 동시에, '노고지리'의 꿈과 결합하여 화자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세계를 암시한다. 푸른 보리밭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을 나타내며, 이는 죽음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생하고자 하는 화자의 바람을 상징한다. 이러한 색채 이미지는 시적 화자의 강한 생명 의식과 꿈을 더욱 깊이 있게 부각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독자에게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4.  시대적 배경과 시적 화자의 상징성

<해바라기의 비명>이 발표된 시기는 일제강점기 말기, 한국 문학사에서 암흑기라 불리는 시기이다. 당시 많은 문인들이 검열과 억압 속에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없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함형수의 시는 개인의 내면적 의지와 자유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문학적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청년 화가라는 시적 화자는 시대적 억압 속에서 자신의 열망과 의지를 지키려는 예술가의 정신을 상징하며, 이는 시대적 한계와 절망을 뛰어넘는 생명력의 추구를 담고 있다.

 

화가로 설정된 시적 화자는 단순히 죽음의 수용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정열과 이상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는 비단 시인 자신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수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대적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과 열정을 끝까지 지키려는 함형수의 시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결론

<해바라기의 비명>은 함형수가 죽음을 앞둔 청년 화가의 강렬한 의지와 삶에 대한 열정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는 대립적 이미지의 시어와 명령형 어조, 강렬한 색채 이미지의 사용을 통해 죽음을 초월한 삶의 의지와 정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죽음과 삶, 열정과 소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시의 화자는 단순히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생명력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삶의 의지를 표출하며,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자유와 열망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점에서 <해바라기의 비명>은 삶과 죽음, 그리고 열정적 생명 의식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시로, 그 문학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